본문 바로가기

Music

팻 마티노(Pat Martino), 기억을 넘어선 기적의 컴백

반응형

팻 마티노는 재즈 기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웨스 몽고메리의 계보를 잇는 후배 기타리스트로서 조지벤슨과 동시대의 아티스트이지만 동생 같은 느낌이 있다.

조지벤슨이 10대의 팻 마티노의 라이브를 보고 인정했던 인터뷰도 있다.

그의 연주는 스윙감과 타이트한 피킹, 하드 밥 재즈 전통의 모던 재즈 라인들, 반복되는 프레이즈 연주 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겠다.

팻 마티노에게는 늘 따라오는 설명이 있는데, 기억상실을 극복한 기타리스트라는 사실이다. 

 

팻 마티노
뭔가 숨길 수 재즈 뮤지션의 모습을 보여주는 팻.

 

남달랐던 그의 시작

1944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팻 마티노는 재즈 팬이셨던 아버지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재즈 클럽을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된다.

12세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재즈 기타리스트 에디 랭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었다.

자니 스미스, 웨스몽고메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그는, 어릴 적부터 프로 뮤지션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재즈 기타의 언어를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레스폴, 웨스 몽고메리, 그랜트 그린, 케니 버렐, 조지 벤슨 같은 최정상급 연주를 가까이서 보면서 습득한 것이다.

그렇게 10대 시절부터 재즈 신의 중심에 있던 팻 마티노는 20대 초반에 이미 완성된 연주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조지 벤슨과 입지나 지명도에서 비슷한 수준을 갖게 된다.

70년대 이후 조지 벤슨은 R&B나 스무드 재즈를 접목하여 상업적인 재즈로 방향을 틀었다면, 팻 마티노는 월드 퓨전 재즈로 길을 확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8년 뇌동맥정맥기형이라는 선천적 질환으로 1980년에 뇌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했고, 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단순한 기억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법도 기억에서 사라진, 연주자로써 생명을 잃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팻 마티노는 이후 10년의 세월을 재활에 보내게 된다.

 

인간승리

수술 이후에 발생한 기억 상실 이후 팻 마티노는 부모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옛 사진 앨범을 보여주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고, 이전에 그가 발표했던 앨범 커버에 있던 그의 사진을 통해 그가 기타리스트였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팻 마티노는 기억하지 못했다.

무려 10년간 재활 생활을 보냈던 팻 마티노는 기타연습과 재즈 공부를 다시 했다.

그가 다시 재즈를 공부했다고 하지만, 사실 팻 마티노에게는 처음 재즈를 연습하고 배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험난한 시간을 통해 1987년 앨범, <The Return>으로 재즈계에 컴백 소식을 알린다.

그렇게 팻 마티노의 커리어 2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의 놀라운 재기에 <Martino Unstrung>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는데, 부제가 ‘A Brain Mystery’이다.

부제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인간 뇌 저 아래에 자리한 기억, 자아, 창의성의 신비를 탐구해 나간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풀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 흥미로울 것이다. (자막까지 보고 싶다면 왓챠에도 본 다큐멘터리가 있다)

누가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외모인데, 타고난 허약한 체질에 계속적으로 작은 병마를 이겨내야 했던 그이기에, 건강에 몹시 신경 쓰면서도 재즈 탐구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천상 뮤지션이다.

성실한 자세로 많은 동료와 후배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꾸준히 자신을 증명해 보이며 활동을 이어갔던 팻 마티노는 중간 10년의 공백 때문인지, 실력과 활동에 비해 평가절하된 뮤지션으로 보인다.

슬프게도 팻 마티노는 2021년 11월에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다가 만 77세로 우리의 곁을 떠나며 60년의 긴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추천 앨범

필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 하나가 있다.

팻 마티노가 웨스몽고메리의 사운드적 느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퓨전재즈의 길을 향해 실험적 사운드를 펼쳐낸 앨범 <Joyous Lake>이다.

1976년에 발표했던,,그리고 그가 수술을 받기 전에 발표한 앨범이라 어찌 보면 첫 번째 커리어에서의 전성기가 담긴 앨범을 추천해보고자 한다.

다시 시작한 두번째 커리어에서는 1997년도에 발표한 <All Sides Now>이다.

여러 장르의 선후배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작업한 앨범으로 여러 사운드가 담겨 있어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Les Paul, Jo Satriani, Mike Stern 등 그야말로 여러 장르의 기타리스트가 참여한 것이다.

팻 마티노가 기타리스트들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은 사람인지 그리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여전히 자신은 현역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의 연주는 첫 번째 커리어든 두 번째 커리어든 늘 살벌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그의 피킹 하는 오른손 폼이 불안해 보일 때가 있는데, 유독 긴 손가락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재기 전의 폼은 달랐을지 궁금하다. 

 

왼쪽이 <Joyous Lake> 오른쪽이 <All Sides Now>의 커버

 

마무리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친구가 보내준 라이브 동영상으로 접했던 팻 마티노이다.

2002년 Umbria Jazz  페스티벌에서 팻 마티노 트리오의 공연이었다.

오르간에 조이 데프란체스코, 드럼에는 바이런 랜담 그리고 특별 게스트로 기타 도사, 존스코필드가 함께 Sunny라는 곡을 연주하는 10여분의 영상이다. 

당시에는 5분으로 나눠진 2개의 파일로 힘겹게 친구로부터 받았었다.

팻 마티노의 끝없는 반복 프레이즈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꼭 한 번씩 찾아보기를 권한다.

심지어 55분의 라이브 전체가 업로드되어 있다. 

해당 영상을 접했을 당시에는 조이 데프란체스코의 연주가 가장 감명 깊었지만, 나중에는 존 스코필드와 팻 마티노의 연주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도 조금 알게 되었다. 

팻 마티노 같은 거장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때마다 음악계는 슬픔에 잠긴다.

그가 그리워질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