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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조 패스(Joe Pass),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선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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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 입문했을 때

록음악을 듣다가 재즈라는 장르로 넘어가게 된 계기 중에 크게 기억에 남는 하나가 있다.

재즈라는 장르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서점에서 재즈 기타 교본이 있길래 궁금증에 구매를 해버렸다. 

어렴풋이 그 당시에는 즉흥 연주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한참 알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재즈라는 장르도 야심 차게 공부해 보겠다며 재즈기타 교본을 구입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현재의 상태를 보니, 그 교본으로 얻은 지식은 여러 재즈 기타리스트에 대한 정보와 코드가 겹쳐지는 화성학적인 기초 지식 정도인 것 같다.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재즈기타 연주 실력은 결국 얻지 못했다.

그 교본에는 재즈 기타리스트의 정보와 꼭 들어야 하는 음반들을 소개하는 페이지들이 중간중간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그게 고급 정보였다.

그중에 웨스 몽고메리와 조 패스, 짐 홀, 조지 벤슨이 정말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앨범을 한 장씩 사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재즈 연주 연습은 하지 않았다.)

몇 번째로 산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패스의 VISTUOSO 앨범을 구매했는데, 이게 정말 큰일이었다.

 

Joe Pass
재즈 기타리스트의 숙명과 같은 대머리의 조 패스.

 

그저 충격 중의 충격 그 자체였다.

록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화려한 기타 솔로와 블루스 음악에서 듣던 필링이 강력한 기타 솔로 라인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우선 음색이 다르다. 더 쉽게 말해서 기타톤이 말랑하고 따듯하다.

오버드라이브나 퍼즈 이펙터를 거친 록이나 블루스 기타톤이 아니고, 그저 기타의 소리만 들리는데, 이게 왜 이렇게 매력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쿠스틱 기타는 아니고,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분명하다.

또 다른 충격은 기타 솔로와 코드가 계속 번가라 가면서 연주가 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연주가 되는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코드 소리도 오묘하게 들리는데 그렇다고 불협화음도 아니고 난생처음 듣는 복잡한 코드들로 그 사운드가 미묘하게 아름답게 다가왔다.

록음악에서 특히 파워코드를 많이 쓰다 보니, 코드라는 것 자체의 중요성을 등한시했었는데, 조패스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훨씬 고차원적으로 들렸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게 정말 한 사람이 연주를 그것도 라이브로 했던 것을 녹음했다고 하니, 이게 신의 경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정말 한참 뒤에 보았던 그의 연주 동영상은 역시나 감탄을 자아냈다.

그 당시에 그런 라이브 연주 동영상을 보려면 DVD를 직접 해외 구매하거나 중고물품을 찾던가 했었다. 아니면 P2P사이트에서 다운을 받아야 했는데, 그게 한 달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궁금한 것은 기타 연주도 바로 찾아낼 수 있어 실력을 향상하기엔 최고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세 번째의 충격은 곡의 진행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도대체 이 한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변화가 너무나 많은데 이게 혹시나 모두 다 즉흥 연주라면,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앨범을 듣고 나서 필자에게 조 패스는 그저 불가능이자 신의 영역이었다.

되돌아보니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인데, 너무나 겁쟁이 같았다.

그의 음악을 듣고서 그 수준을 넘어서겠다고 생각한다면 도전해 보라!!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조 패스에 대해서

조 패스는 1929년도에 태어나 9살 때 통기타를 선물 받고 매주 연습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14살 때부터 빅밴드에서 활동했는데, 거기서 잘못 마약을 접하게 된 것이 오점이 되었다.

마약 중독이 된 그는 1950년대, 그러니깐 한참 음악 활동을 펼쳐야 했던 20대와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감옥과 재활병원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겨우 재활에 성공하여 1962년에 <Sounds of Synanon>라는 앨범으로 재즈신에 복귀한다.

그렇게 다소 늦은 나이에 다운비트 잡지에 올 해의 신인으로 뽑히기도 하는데 그가 34살일 때 벌어진 일이며, 연주자로서는 연주가 중요한 재즈신에서 꽤나 늦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유명한 스윙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과 닐스헤닝과 함께 트리오로도 활동했으며, 70, 80년대까지는 엘라 피츠제럴드와 듀엣 앨범 시리즈도 발표한다.

안타깝게도 1992년에 간암 진단을 받게 되어 마지막까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활동했으나 1994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만약 그가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녹음과 앨범들을 남아 있었을 거다.

혹은, 그가 활동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의 열정적인 활동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것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 탓을 들기도 했다고 한다.

워낙에 온순한 성품의 조 패스였는데,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눈치챈 아버지가 너무 강하게 연습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귀로만 곡조를 찾거나, 음계와 음계 사이에 공간을 공간을 남겨두지 말고 계속 소리를 채우라는 등의 강요말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 덕분에 고차원적인 테크닉을 조패스가 가질 수 있었겠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마약에 빠진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Virtuoso 커버
Virtuoso 1집. 기타를 치고나서 땀 닦아내는 듯한 그의 모습.

 

Virtuoso

필자가 들었던 앨범은 사실 1집부터 4집까지 있다.

조 패스가 재즈신에 복귀하고 세션이나 방송사에서 쉴 새 없이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빅밴드 편성 같은 곳에서 재즈기타의 역할은 돋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의 재즈 레이블 파블로에 조 패스가 소속이 되는데, 노먼이 조 패스에게 전례가 없던 재즈 솔로 기타 앨범을 녹음하자고 제안한 것이 <Virtuoso>의 탄생 배경이다.

정말로 전례가 없던 시도이기도 했지만 그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테크닉도 전례가 없는 것이었을 거다.

빠른 코드 체인지, 워킹 베이스라인, 중간에 나오는 솔로라인까지, 그 와중에 지켜지는 스윙감이 넘쳐나는 연주인데, 말 그대로 혼자서 장구치고 북 치고 난리가 난다.

장구와 북을 친다고 하니 조금 가볍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의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재즈기타 연주를 꼭 한 번이라도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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