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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케니 버랠(Kenny Burrell), 멜로딕 플레이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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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버랠(Kenny Burrell)은 재즈 음악계의 전설로 추앙받는다. 

기타 테크닉과 멜로디 라인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으며, 재즈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많은 족적을 남겼으며, 수 세대에 걸친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Kenny Burrell
젊은 시절의 케니 버랠. 곱슬 머리가 인상적이다.

 

재즈 입문

케니 버랠은 1931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몰두하였다.

문화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다양한 음악 장르에 노출되었지만,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사로잡은 것은 재즈였다.

찰리 크리스천과 장고 라인하르트와 같은 거장 뮤지션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고 한다.

 

유명세를 떨치다

케니 버랠은 그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재즈계에서 오랫동안 연주를 해오면서 테크닉과 특출 난 재능을 먼저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웨인 주립 대학(Wayne State University)에 재학 중이던 1951년, 디지 길레스피의 음반 녹음에 참여하며 재즈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1955년 오스카 피터슨과 함께 6개월간 투어를 한 그는 뉴욕으로 이주를 결심하게 된다.

디트로이트에서 활동했었지만 이미 뮤지션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어, 사보이, 프리스티지, 블루 노트 같은 재즈 레이블에서 사이드맨과 스튜디오 음악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존 콜트레인, 지미 스미스, 빌리 홀리데이와 같은 레전드 재즈뮤지션들과 협연을 하면서 재즈계에서 그의 명성을 공고히 하게 된다.

 

재즈 교육자

케니 버랠은 재즈 교육자로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썼다.

1970년부터 세미나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1978년 UCLA에 재즈학위과정을 처음 만들었다.

특히나 듀크 엘링턴의 음악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업을 하였다.

듀크 엘링턴의 음악과 삶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헌사와 해석을 기록하고 가르쳤다.

시대적으로 둘이 같이 협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다.

둘이 함께 작업한 적은 없었지만, 듀크 엘링턴은 캐니 버렐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라고 했다고 한다.

2004년 다운비트 매거진에서 재즈 교육 부분에서 교육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음악적 스타일

케니 버랠의 연주 특징 중 하나는 흠잡을 데 없는 표현과 음색이다. 

그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기타 라인은 복잡한 멜로디를 쉽게 엮어내며, 듣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블루스와 비밥을 기반으로 소울 풀한 연주를 펼치며, 재즈 음악의 본질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포착해 나갔다.

 

추천 앨범

재즈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1963)가 특히나 재즈역사에서 유의미한 명반으로 자주 거론된다. 

(커버 디자인도 이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1968년도에 발표한 Blues - The Common Ground를 추천하고 싶다.

빅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케니 버랠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앨범이다.

다양한 장르와 리듬이 섞여 있어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BLUES THE COMMON GROUND
여전히 곱슬 머리를 자랑한다.

 

재즈의 산 증인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2024년)에서 케니 버랠의 나이는 92세쯤으로 아직 살아 계신다.

연로한 탓인지 공개적인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10여 년 전, 인터넷을 통해 그가 무대에 올라와 기타를 연주하던 동영상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직 기타를 치고 계시구나!' 하고 놀라며 지인과 함께 대단하다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그의 손이 전성기처럼 움직이지 못하였으나, 80대의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그가 재즈사에 남긴 업적과 수많은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그저 존경을 담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최근의 모습. 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들이 재즈의 역사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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