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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Wynton Marsalis (윈튼 마살리스), 혁신속에 전통 재즈를 지켜낸 트럼페터

by 버캣김 202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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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nton Marsalis(윈튼 마살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1986년 밴쿠버 재즈 페스티벌. 재즈의 살아있는 신화 마일스 데이비스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던 순간, 24세의 젊은 트럼페터가 아무 예고 없이 걸어 올라왔다. 그는 마일스 옆에 서서 트럼펫을 들었다. 연주는 멈췄고, 마일스는 낮게 말했다. “내 무대에서 내려가.” 그 청년이 바로 윈튼 마살리스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것은 1980년대 재즈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둘러싼 상징적인 충돌이었다.

 

Wynton Marsalis
젊은 시절을 지나 기성 재즈뮤지션이 된 마살리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전통의 후계자’

1961년 뉴올리언스 출생. 그의 아버지 Ellis Marsalis는 존경받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다.

형제들 또한 모두 뛰어난 음악가다. 그는 재즈의 본고장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블루스와 스윙을 몸에 익혔다.

그러나 그는 지역적 전통에 머무르지 않았다.

줄리아드 음대에서 클래식 트럼펫을 전공하며 기술적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 시기 그는 재즈와 클래식을 동시에 연주하는 보기 드문 연주자로 성장했다.

 

그래미 시상식, 그리고 불편한 발언

1984년 그래미 시상식. 그 해 허비 행콕은 대중적 히트곡 <Rockit>으로 R&B 부문 상을 받았다.

재즈는 MTV와 팝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날 윈튼 마살리스는 재즈와 클래식 부문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강요된 유행이나 저급한 취향에 의해 제한될 수 없는 예술.”

이 발언은 당시 팝적 사운드로 이동하던 재즈 거장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그는 훗날 특정 인물을 향한 말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논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대 재즈의 위기와 윈튼의 선택

마일스 데이비스는 전자 사운드와 펑크 리듬을 수용하며 재즈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반면 윈튼은 말했다. “스윙하지 않으면 재즈가 아니다.”

그에게 재즈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즉흥연주, 블루스, 스윙.

그는 재즈를 무한한 자유로 정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모두가 자유롭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Jazz at Lincoln Center, 재즈의 성전을 세우다

윈튼은 깨달았다. 전통은 개인의 연주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뉴욕 링컨센터에 재즈 전용 공연장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재즈로 이런 공간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는 재즈가 미국의 고전 음악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Jazz at Lincoln Center다.

여기서 출범한 JLCO(Jazz at Lincoln Center Orchestra)는 15인의 최정상 연주자로 구성된 빅밴드다.

철저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되, 그 안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즉흥을 펼친다.

그는 단원들에게 항상 정장을 요구했다.

이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음악과 관객에 대한 존중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인가, 또 다른 혁신인가

많은 이들은 그를 보수주의자라 비판했다.

퓨전과 전자 재즈를 배제하고, 전통적 어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마일스가 재즈의 외연을 확장했다면, 윈튼은 그 중심을 단단히 고정했다.

한쪽이 지평을 넓혔다면, 다른 한쪽은 기초를 다졌다.

40년이 흐른 지금, 재즈는 여전히 살아 있다.

링컨센터는 세계 재즈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고, 줄리아드에는 재즈 학과가 자리 잡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JLCO의 무대

JLCO의 공연을 현장에서 들으면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완벽한 질서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는 결코 답답하지 않다고 말이다.

오히려 더 깊고, 더 강렬하다.

빅밴드의 다층적 사운드, 정교하게 맞물리는 리듬 섹션, 그리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트럼펫의 선율.

윈튼의 철학은 말이 아니라 소리로 증명된다.

2026년, 올해 LG 아트센터에서 윈튼이 JLCO 멤버들과 함께 내한한다는 것이다.

이후로 윈튼이 JLCO 리더의 자리를 내려놓는다고 하니,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점 참고하시길.

 

윈튼 마살리스 내한
윈튼 마살리스 내한 공연 포스터

 

마일스와 윈튼, 재즈의 두 축

마일스 데이비스가 혁신의 상징이라면, 윈튼 마살리스는 전통의 상징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재즈를 사랑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밴쿠버에서 쫓겨난 청년은 결국 재즈를 제도권 중심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재즈는 두 방향 모두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추천 감상 리스트

① Black Codes (From the Underground)
② Blood on the Fields
③ Cherokee (라이브 버전)
④ JLCO 빅밴드 공연 영상

 

마무리

윈튼 마살리스는 단순한 트럼페터가 아니다.

그는 재즈의 규칙을 정리하고, 그 전통을 제도로 고착시킨 인물이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재즈’의 위상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논쟁을 떠나, 그의 트럼펫은 여전히 스윙한다.